부동산 디벨로퍼 설 땅이 없어지네
부동산 디벨로퍼 설 땅이 없어지네
규제 강화에다 땅값 비싸 사업 거의 스톱
부동산개발업체 대표인 이모(46)씨는 지난해 10월부터 경기 파주시에서 타운하우스용 토지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5000여평(6필지)을 사 200여가구를 지으려 했지만 최근 이를 포기했다. 갈수록 더하는 규제와 땅값 때문에 두 손 들었다.
처음엔 평당 80만원짜리 땅도 있었지만 올해 들어 100만원에도 안 팔겠다는 땅주인이 많다.
올해부터 외지인(부재지주)에게 양도세가 중과(66%, 주민세 6% 포함)되자 일부 외지인 땅주인들이 호가를 높여 부르며 버티기 시작한 것.
이씨는 “규제가 많은 아파트 대신 타운하우스 개발로 사업 방향을 바꿨지만 양도세가 전가된 땅값 때문에 이마저 어렵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곳곳에서 사업추진 중단
요즘 부동산개발업체들이 죽을 맛이다. 개발사업을 위해 땅을 사려하지만 규제로 묶이고, 세금으로 막히는 등 사정이 여의치가 않아서다.
전기제품 생산업체(서울 종로구 소재)와 계약을 맺고 대형 물류창고 건축 인허가를 대행하던 이모(43)씨도 이런 경우다. 얼마전 그는 경부고속도로 인근인 경기도 화성에 좋은 땅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갔으나 실제 땅을 확인하고선 크게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옆 땅(9000여평)에 이미 공장이 들어선 바람에 창고 건축허가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현행 산지관리법상 이미 개발된 땅(1만평 이상)과 붙어있는 땅은 연접개발 제한에 걸려 개발이 불가능하다.
이씨는 “서너 군데 땅을 돌아봤으나 모두 개발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났다”며 “입지여건이 좋은 수도권 땅은 대부분 규제로 묶여 ‘그림 속의 떡’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수도권 땅은 ‘그림 속의 떡’
어렵게 개발이 가능한 땅을 만나더라도 이번에는 ‘관리지역 세분화 작업’이 앞을 가로 막는다. 관리지역 세분화 작업이란 전국의 관리지역을 개발이 쉬운 땅(계획 관리)과 어려운 땅(생산ㆍ보전 관리)으로 분류하는 것을 말한다.
수도권에서는 경기도 고양시만 이 작업을 끝냈고, 나머지 30여개 지자체는 분류 작업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분류가 끝나지 않은 지자체의 경우 개발허가 신청이 들어와도 해당 토지가 어떤 땅으로 분류될지 몰라 이를 반려하기 일쑤다.
서울 강남에 사무실을 둔 B개발업체 대표 우모(53)씨는 이런 사실을 잘 모르고 덜컥 땅을 샀다가 크게 손해 볼 처지가 됐다. 지난해 3월 우씨는 펜션단지를 개발할 목적으로 안성시 보개면 신안저수지 주변 임야 6000(평당 20만원)평을 매입, 시에 허가를 신청했으나 반려 당했다.
이 땅에 대한 세분화 작업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안성시의 반려 사유다. 우씨는 “관리지역 내 임야라서 개발이 쉬울 줄 알았다”며 “주변 자연경관이 뛰어나 보전 관리지역으로 묶이면 개발이 제한돼 손해가 막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금 전가로 땅값 올라 수익성 떨어져
중소 시행업체인 S개발도 최근 파주시 금촌동에 아파트를 지으려다 땅값 때문에 결국 사업을 접었다.
비사업용 토지의 양도소득세가 60%로 높아지면서 땅 주인이 세금부담을 업체에 전가해 땅값이 올라 사업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평당 택지비가 210만 원으로 비싼데다 분양가를 평당 700만 원 이상 받기 어려워 2∼3%대의 수익도 건지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업체의 사업계획서를 보면 계획 중인 아파트단지(33평형 300가구)의 총 사업원가는 806억원. 이 가운데 순수한 땅값은 420억원(2만평), 자금조달에 따른 이자는 84억원(분양완료 시점까지 산정)으로 토지비 비중이 원가의 63%나 된다.
이 업체는 7% 안팎의 수익률을 낸다고 계획하고 분양가를 평당 1000만원으로 책정했다. S업체 대표 윤모(57)씨는 “요즘 같은 때 분양가가 평당 1000만원이면 분양성이 크게 떨어진다”며 “분양이 지연되면 손해가 날 수밖에 없어 사업추진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수급불균형 등 부작용 우려
이처럼 규제와 세금 강화 등으로 수도권에 땅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부동산 개발업체인 뉴스타부동산의 이원희 이사는 “땅 주인들이 돈이 급한 것도 아니고, 지금 팔아봤자 비싼 세금만 무는데 왜 싼값에 땅을 내놓겠느냐”면서 “원재료인 땅값이 요지부동인 상황에서 규제까지 강화돼 시행업체들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다산서비스 이종창 대표는 “각종 규제로 민간업체의 각종 사업용 토지 공급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타운하우스와 같은 소규모 개발사업도 공공용지에만 의존하게 돼 수급 불균형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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